호텔방 인생

 

포어징엔 Vorsingen

누구나 취업을 하려면 면접을 봐야 한다. 대기업, 중소기업, 동네 카페, 경제활동이 이뤄지는 거의 모든 곳은 면접을 본다. 심지어 봉사활동도 면접을 보기도 한다. 성악가의 면접은 주로 오디션이라고 부른다.

💡 오디션을 독일어로는 Vorsingen, [포어징엔]으로 발음된다. ‘앞에서(Vor) 노래하다(singen)’라는 정말 직관적인 단어다. ‘듣다’라는 뜻의 라틴어 audire에서 유래한 ‘Audition’은 좀 더 패널 입장의 단어 같은 느낌이다. 뭔가 ‘적’의 언어 같달까? 노래하는 사람의 입장을 대변한 독일어 ‘포어징엔’이 나는 더 좋다.

성악가는 관객을 위해 노래를 하지만, 그들의 고용 여부는 주로 캐스팅 디렉터 혹은 극장장이라는 “게이트키퍼”가 결정을 한다. 오로지 그들의 취향, 그날의 기분, 적절한 시기에 찾던 목소리 혹은 캐릭터에 의해 결정된다. 심지어 노래하는 순서, 그들의 점심시간, 졸린 정도, 지루한 정도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오디션이라는 제도는 꽤나 공평하기도, 불공평하기도 하다. 성악가는 노래를 허락받아야, 그제서야 먹고 살 수 있다.

나는 아직까지 오디션을 좋아하고 즐기는 성악가를 만나본 적이 없다. 오디션은 꽤나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뮌헨으로. Nach München

독일은 국가에서 에이전시(ZAV)를 운영한다. 성악가, 연극배우, 합창단원, 가수, 오케스트라 연주자, 밴드 등등 수많은 예술가들을 위해 존재하는 에이전시다. 이곳의 가장 멋진 점은, 커미션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 이에 반해 전속 에이전시들은 자기들이 찾아온 일은 당연하고, 가수가 찾아온 일에서도 커미션을 떼간다. 그들이 주선한 오디션으로 한 극장의 Fest(전속) 가수가 된다면, 2년간 매달 월급의 5~10프로를 가져간다. 물론 그 후로도 상호 협의간에 계속 가져가기도 한다.

뮌헨에서 전국의 ZAV 오페라 솔리스트 담당 에이전트들을 모아 놓고 대대적인 오디션을 열었다. 그곳에 초대되어 지난주에 뮌헨을 다녀왔다. (여행지로서의 뮌헨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이것은 주제에 벗어나기에 다른 글에 소개해보려 한다.)

오디션 전날,

함부르크에서 고속열차를 6시간을 타고 뮌헨으로 향한다. 지난 몇 년간 장거리 여행을 많이 해서 그런지 6시간은 이제 짧게 느껴진다. 호텔 체크인을 하고 시내를 둘러본다. 나의 엄격한 식단을 잠시 내려놓고, 오디션 전날 저녁은 반드시 나의 소울푸드, 베트남 쌀국수를 먹는다. 유난히 정성스럽게 우려낸 쌀국수 국물에는 오디션 여행의 여지없는 동행자, ‘불안감’을 잠재우는 힘이 있다.

유난 얘기가 나왔으니, 하나 더 고백하겠다. 유난을 떠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오디션을 다니며 유난을 떠는 부분이 하나 있다면 겨울에는 가습기를 들고 다닌다는 점이다. 호텔에 가습기를 켜놓고 저녁 시간을 얌전히 보내고 일찍 잠을 청해 본다. 물론 잠은 절대 일찍 오지 않는다.

마치 템플릿처럼 나의 오디션 전날은 대부분 이렇게 진행된다. 이 부분은 딱히 싫지 않다. 여러 나라와 여러 도시를 가는 경험은 꽤나 즐길 만하다.

오디션 당일,

이 날의 최대의 난제는 ‘목 풀기’다. 나는 목을 많이 풀어야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래도 목을 맘껏 풀지 못하면 채워지지 않는 불안감이 트리거된다. 큰 도시에 간다면 꼭 대여 가능한 연습실을 알아보는 편이다. 기쁘게도 뮌헨에는 최첨단 연습실이 있었다. 시간당 10-15유로 정도 들었던 것 같다. 싸진 않다.

호텔로 돌아가 정장으로 갈아입는다. 나도 모르게 이것을 전투복이라 쓸 뻔하며, 왠지 한껏 ‘아재’가 되었음을 느꼈다. 아재 성악가들은 정장이나 턱시도를 전투복이라 부른다. 재미는 없다.

오디션은 주로 아침에 진행되는데, 이 날은 여유롭게도 13:45분이었다. 뮌헨 ZAV는 거대한 노동청 건물 안에 있었다. 아름다운 중세 건물이 가득한 뮌헨에 어울리지 않는 잿빛의 신식 건물이었다. 내부는 세련됐다. 노동청에 어울리지 않는 연주를 할 만한 홀이 있다.

입구 옆 회의실에서 10분간 목을 풀 수 있게 해줬다. 이미 목은 잘 풀렸지만, 한번 목소리를 내본다. 회의실의 미덕은 ‘방음’인가보다. 울림이 하나도 없어 귀를 막고 노래를 하는 듯했다. 괜히 박수를 한번 짝 쳐본다. 박수 소리마저도 뻑뻑하니 작다. 이곳에서 목소리를 내보면 목을 상하게 할 것 같아 그저 입을 다물고 열린 창밖을 10분간 바라봤다.

늙은 젊은이, 젊은 늙은이,

이제 만 32살이 되자, 콩쿠르를 나가보면 내가 나이가 많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콩쿠르에 나가면 남자 중 막내였던 경우가 있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오늘은 어떤 사람들을 만날까, 내가 아는 사람은 올까 궁금했다.

회의실을 나오니 다른 참가자들이 보인다.

아니?

내 앞에 보이는 남자분은 못해도 45살은 되어 보였다. 나는 독일인들의 나이를 잘 맞히지 못하는 편이라 늘 낮춰서 보려는 습관을 얻게 됐다. 그렇게 감안을 해도 30대 후반은 족히 넘을 것 같아 보였다. 옆에 있는 다른 여자분을 보았다. 그분의 외모나 목소리나 아무리 젊어도 30대 후반으로 보였다. 내 또래 같은 남자도 있긴 했다.

몇 년 만인가, 내가 제일 어리다는 이 느낌?

내가 활동을 비교적 어린 나이에 시작했기에 어느새 나를 너무 늙게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이곳에서 어린 편이라는 오랜만에 느낀 그 기분이 참.. 좋았다. 기분 덕인지 노래를 꽤나 자신 있게 하고 나온 것 같다.

호텔방 인생에 대하여

끝나고 노동청을 나서니 아까보다 날이 많이 풀렸다.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중 독일에서 활동 중이신 학교 대선배님이 몇년 전에 말해주신 일화가 떠올랐다.

오디션을 가서 50대 아저씨를 본 적이 있는데, 순간 나는 저 나이까지는 오디션을 다니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매우 강하게 드셨다고 했다. 나도 갑자기 똑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솔리스트로 활동을 한다면,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 오디션을 40대에도, 운이 없다면 50대에도 보러 다녀야 하는가? 그것은 어떤 인생인가?

갑자기 고독한 호텔방이 머리에 떠오른다. 혼자 있기에는 너무도 넓은 침대와 알아듣지 못하기에 절대 키지 않는 TV가 뒤따른다. 만약 잘 풀려서 이 나라 저 나라에서 노래하는 성악가가 되어도, 아니면 운명이 나를 끝없는 오디션으로 이끈다고 하여도, 나는 결국 고독한 호텔방에 있겠구나. 감히 세계를 다니며 지금 친히 호텔방 생활을 하는 수많은 선배님들을 두고 이런 마음을 느끼는 게 새삼 부끄럽긴 하다.

나는 호텔방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인가? 새로운 도시에서의 그 흥미롭고도 심심한 산책들과, 혼밥을 위해 정성껏 구글맵을 별점 4.5이상의 맛집들로 도배하는 행위를 나는 즐기는가? 나란 사람의 정체성과 일과의 큰 부분이 호텔방과 혼밥이 되어도 나는 행복할 것인가? 혹시 내가 그것이 싫다면, 그럼에도 계속 감내 할 만큼 노래와 오페라를 사랑하는가?

물론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저녁에 먹으려고 찾아놓은 맛집이 구글 지도에 보이자 머리를 메우던 질문들은 사라진다. 저 멀리 묵고있는 호텔이 보이니 맘이 한결 가벼워진다. 나는 호텔방 체질이 되어가는 것일까?

영하의 날씨에도 따뜻하게 내리 쬐는 뮌헨의 햇빛을 받으며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게 되었다. 그리고 이 질문을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건네보고 싶다: 당신의 호텔방은 무엇인가? 그걸 감내 할 만큼 ‘그 일’을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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