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잃어버린 벨칸토 : 1. 호흡에 중독된 성악가들
타고난 자와 한낱 일반인
“호흡은 없어. 노래할 때 호흡을 들먹이는 건 다 거짓말이야.”
정확히 11년 전, 한국에서 학부생일때 나의 스승님께 들은 충격적인 말이다. 그 당시에는 이 말을 이해하지도, 동의하지도 못했다. 단전 호흡의 나라, 숨만 잘 쉬면 암세포도 사라진다는 대한민국에서 자란 내가 아닌가? 내게 있어 호흡은 소리의 고수가 되려면 깨달아야 하는 마지막 비기 같은, 그러나 도저히 알 수 없는 미지의 무언가였다. 전 세계 오페라계를 그때나 지금이나 호령하고 계신 우리 선생님. 호흡을 완강히 부정하시는 스승님을 당시 나는 그저 ‘정말 타고난 사람이구나.’ 정도로 받아들였다. 그래도 그 가르침 아래에서 많은것을 배웠고, 졸업 후 나는 유럽으로 유학을 와서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나의 무천도사

드디어 만났다. 내가 상상하던 미지의 Guru-모든 것을 깨달은 스승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미국인 선생님을. 심지어 외모도 무천도사와 무척 닮았다. 80을 바라보는 나이가 지긋하신 그분은 Helge Roswaenge, Lauritz Melchior, Mario del Monaco 같은 내로라 하는 유명 대가들과 공부했고, Garcia와 Lamperti -19세기 전설적인 성악 교육자들-의 계보를 잇는 분이었다.
그 분의 가르침은 오직 BREATH(숨)였다. 찾아 헤메이던 오아시스를 만난 것만 같았다. 숨을 쉬는 법도 남달랐다. 배를 당기면서 숨을 등 허리에 채우라고 한다. 고음이 안나면, BREATHE(숨 쉬어)! 목이 좀 아프면 BREATHE! 저음이 안나도 BREATHE! 가사를 잊어먹어도 BREATHE!(..엥?) 심지어 그 분의 이메일 서명조차 BREATHE BREATHE BREATHE!!!였다.
그렇게 나는 호흡에 집착을 하기 시작했다. 지독한 훈련을 통해, 흡기 1분- 그대로 숨참기 1분- 호기 1분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 방식은 어느 정도 먹혔다. 덕분에 독일의 유명한 극장에서 솔리스트로 일을 할 수 있게 됐고, 나는 호흡에 대한 굳건한 신념을 가진채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이제 연습실과 레슨실을 벗어나 무대에 선 내게 BREATHE! 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발성 고민들이 늘어만 갔다.
여전히 찾지 못한 나의 마지막 비기
점점 BREATHE!만으로는 발전이 없어졌다. 특히 고음이 문제였다. 나는 다시 선생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깨닫지 못한 그 마지막 ‘비기’를 알려줄 누군가를 찾아내고 싶었다. 그렇게 업계에서 유명한 또 다른 미국인 선생을 찾았다. 그는 BREATH(숨)이 아닌, SUPPORT!(호흡 지지)파 선생이었다. 이제는 숨을 1분씩 들이마시는 대신, 바닥에 누워 내 아랫배에 다른 여학생을 세워놓고, 그녀를 들어올리며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꼬박 2번의 여름을 땀과 돈을 쏟으며 그가 매 해 나폴리에서 여는 마스터클래스에 갔다. 다시한번 지독한 훈련으로 여학생은 물론 헬스장의 원판을 몇 개를 쌓아놓고도 튕겨버릴 뱃심을 얻었으나, 여전히 나의 궁금증과 갈망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곳에도 그 마지막 ‘비기’는 없었다. 탈장이 생기지 않았음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마7:7)
마지막 선생과 결별한 후에는 꽤나 많이 실망을 했었다. 인생의 어려운 시기도 함께 겹치기도 했고, 그 무엇보다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때 우연히 한 책을 읽게 되었다. 다른 아티클에서 짧게 소개한 [We Sang Better] 라는 책이었다. 간략히 소개하자면 1800년에서 1960년 사이 노래하고 가르친 대가들의 노래 팁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1, 2권으로 두개의 볼륨이고, 합치면 700페이지가 넘는다. 무엇에 홀린듯 700페이지를 읽어댔다. 그렇게 두번을 읽었다. 정말 깊은 깨달음을 찾아냈다.
그 깨달음은
“호흡은 없어. 노래할 때 호흡을 들먹이는 건 다 거짓말이야.”
였다. 이 비밀을 찾아 바다건너 대륙을 넘어왔으나, 그 비밀은 11년 전 한국에서 나의 스승님께서 이미 주셨었다.
인류가 가장 노래를 잘하는 시대를 꼽아보라 하면 논쟁이 매우 격할 것이다. 김나박이 논쟁은 아무것도 아닌 반향이 일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가장 아름답게 노래한 시대라면? 나는 단연 벨칸토 시대 (18세기-19세기 초)를 꼽는다. 이 때에 수 많은 명작 오페라들이 탄생했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 오페라 극장은 영화관이었고 넷플릭스였다. 사람들은 가수들의 열창에 박수와 괴성을 지르며 환호하고, 눈물을 흘리고, 그날 본 오페라에 대해 밤샌 토론을 했다. 인류의 성악 예술이 가장 꽃 폈던 그 시대, 그 시대의 대부분의 가수들은 BREATH와 SUPPORT에 대해 생각하지도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입을 모아 공통적으로 한 말은 “just breathe naturally (그냥 자연스럽게 숨을 쉬라)”였다.
드디어 만난 ‘깨달음’
시행착오의 시간이 있었지만, 멈췄던 성장에 다시 싹이 돋기 시작한다. 해결되지 않던 부분들이 해결되기 시작한다.
[We sang better] 의 가장 발칙한 챕터 “a side glance only at breathing (호흡에 살짝 곁눈질)”를 다루며 짧은 시리즈를 연재해보려고 한다.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길 바라며.
연재를 시작하며 이것 하나는 확실히 밝혀둔다 : “반박시 당신의 말이 다 옳습니다.”